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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일 연중 제24주일

 

오늘 1독서에서는 이웃을 용서하는 일이 주님께 용서받기 위한 전제

로 선언 됩니다.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

도 없어지리라.”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다음과 같이 청

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이처럼 우리는 이웃을 용서하여야 할 당위성을 주님께 우리 죄를 용

서 받으려는 데에서 찾게 됩니다. 그런데 이는 자칫하면 하느님의 용서가,

리의 선행으로 얻게 되는 보상이나 대가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오늘 복음의 비유는 오히려 우리가 용서받은 사실이 먼저라는 점을 분명

히 지적합니다. 만 탈렌트를 임금에게 빚진 사람이 있습니다. 한 탈렌트도

노동자 하루 품삯(데나리온)의 육천 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인데, 무려 그

만 배에 해당하는 빚을 졌다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임금이 그 큰돈을 왜 빌려주었는지, 종은 그 돈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였는지, 비유는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도 전하여 주지 않습니다. 다만 놀

라운 사실 하나를 간결하게 말할 뿐입니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전에 우리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또 그 죄가 얼

마나 무거운지 일일이 캐묻지 않으시고 그냥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가엾은

마음이 드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용서는 어떠한 전제도 두지 않습

니다. 오로지 그분의 자비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용서를

받음 뒤에 보이는 태도입니다. 백 데나니온을 빚진 동료의 빚을 탕감하여 줄

, 아니면 그 빚을 갚으라고 성을 내며 그를 감옥에 가둘지 말입니다.

이웃을 용서하여야 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먼저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용서받은 체험과 그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너에게 자

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느

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를 입은 사람의 행동에 따라, 베푸신 자비를 다시 거

두어들이실 수 있는 분이심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다.

 

- 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 필사 -